신덕왕후능인 정릉은 서울시 성북구 아리랑로 19길 116 (정릉동)에 있으며,
운영시간은 봄(1월~5월), 가을(9월~10월) 06 : 00 ~ 18 : 00
여름(6월~8월) 06 : 00 ~ 18 : 30, 겨울(11월~1월) 06 : 30 ~ 17 : 30 이다.
우이신설 경전철 정릉역(국민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1km 거리로 도보 15분 정도 소요된다.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은 2009년 6월 30일 세계유산 조선왕릉으로 등재되었고 사적 제208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덕왕후 강씨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계비로 건국하기 전 고려시대 풍습에 따라 향처(고향의 부인)와 경처(개경의 부인)을 두었는데 강씨는 경처로 이성계가 수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우면서도 지방토호 출신이라는 신분 때문에 중앙 정부 진출에 한계를 느껴 개성의 권문세족이었던 강씨와 정략적으로 혼인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신덕왕후 강씨는 1392년 조선이 개국되자마자 현비로 책봉되었다.
태조의 원비는 추존 된 신의왕후였으나 태조 즉위 전인 1391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조선 왕조 최초의 왕비는 신덕왕후 강씨다.
1396년 신덕왕후가 갑자기 사망하자 자신도 사후에 같이 묻히길 원했던 태조는 한양 도성 안에 왕릉터를 정하고 능호를 정릉으로 정했는데 정릉이 있는 곳이라 해서 정동이라 불렸으며 현재 서울시 중구 정동이다.
정릉이 현재 위치로 옮겨진 것은 계모 신덕왕후와 이복동생 방간의 세자책봉 등 권력투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태종이 즉위하면서 정릉이 도성 안에 있고 능역도 광대하다는 것을 문제삼아 1409년에 현재의 정릉자리로 옮겼다.
봉분에 난간석과 병풍석이 없으며 혼유석, 문인석, 석마와 각각 1쌍의 석양과 석호가 있는데 후대의 다른 왕비 능에 비해 조선 초대 왕비의 능인 정릉은 규모도 적고 초라하며 석물도 원형이 아니라고 한다.
본래 자리였던 정동에서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 병풍석, 난간석, 무인석 등 많은 석물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태종은 정릉을 현재 위치로 옮기면서 왕비의 제례를 폐하고 종묘에 신위를 모실 때도 태조와 자신의 친모인 신의왕후와 함께 모시고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지위를 격하해 신위를 모시지 않았다.
1410년 8월 홍수 때 흙으로 만든 광통교가 무너지자 태종은 정릉의 석물로 돌다리를 만들도록 했다.
1960년 청계천 복개공사로 묻히면서 볼 수 없었던 광통교는 2005년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병풍석, 방울, 방패 조각 들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600년이 넘는 세월에도 석물들의 보존상태가 좋아 지금도 청계천 광통교에 가면 본래 정릉의 석물들을 볼 수 있다.
신덕왕후가 복위된 것은 250여년 후인 현종 10년(1669년)에 송시열 등이 복위를 주장해 신덕왕후 강씨의 신주가 종묘에 봉안되었다.
신덕왕후 강씨의 신주를 종묘에 안치하던 날 정릉 일대에 소낙비가 쏟아졌는데 백성들은 이 비를 '세원지우(洗寃之雨)'라 불렀는데 '신덕왕후의 원한을 씻어주는 비"라는 뜻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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