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光陵)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광릉수목원로 354에 있으며 광릉수목원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고 사적 제197호로 지정되어있다.
광릉은 249만 4,800㎡에 달하는 면적에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형상이라는 쌍룡농주형(雙龍弄珠形)의 명당자리로 자리가 좋아서 세조 이후 400여 년간 그의 후손이 조선을 통치했다고 한다.
광릉 숲은 광릉이 조성되면서 왕릉의 부속림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했고 일제 강점기에도 임업 시험림 구실을 한 덕분에 개발과 훼손을 피해 지금과 같은 광릉수목원으로 관리되면서 자연 생태계의 보고로 남아 있다.
세조는 조선 제4대 왕인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수양대군에 봉해졌으며 세종 이후 첫째 아들인 문종이 뒤를 이었으나 병약해 단명을 하는 바람에 단종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게 되었다.
단종 즉위 1년 후(1453년)에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김종서가 모반했다는 누명을 쒸워 김종서, 황보인 등 조정의 중신들을 무참히 죽인 계유정난을 일으켜 조정의 실권을 장악했고 2년 후인 1455년에 단종으로 하여금 양위하게 하여 왕위에 올라 조선 제7대 왕인 세조가 되었다.
광릉은 중앙에 정자각이 있고 그위로 좌우언덕에 왼쪽은 세조능, 오른쪽은 정희왕후 능이 있는데 이와같이 하나의 정자각을 가운데 두고 정자각 뒤편 2개의 언덕에 각각 능을 구성하는 '동원이강릉' 형식은 광릉이 최초라고 한다.
구리시 동구릉 안에 있는 조선 제5대 왕인 문종의 현릉도 같은 형식이나 광릉의 조성 시기가 현릉보다 앞선다고 한다.
광릉은 이전 왕릉과 건축방법을 다르게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세조가 죽으면서 "내가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과 석곽을 사용하지 말고 병풍석도 쓰지마라."라고 유명을 내렸다.
그래서 광릉은 병풍석이 없으며 병풍석에 새겼던 신상을 난간 종자석주에 옮겨 새겼고 석실도 회격으로 바뀌었는데 이후 병풍석을 상설하지 않고 석실 대신 회격으로 조성한 능이 많이 등장하게 되었다.
광릉은 다른 조선 왕릉과 다른 것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입구로 들어가면 하마비가 있어서 선왕, 선비 를 모시는 제사를 주관하기 위해 친행한 왕 조차도 이곳에서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야 했다.
세조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야심가라는 혹평과 왕권과 중앙 집권체제 강화, 국방력 강화, 호적 호패제 강화, 직전제 실시, 경국대전 편찬 등 괄목할만 한 치적이 많다고 인정하는 학자들도 많이 있다.
세조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로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아래로 처진 소나무 가지에 걸릴까 염려를 하시자 소나무가 스스로 처진 가지를 번쩍 들어올려 가마가 무사히 통과하게 했다고 하는데 이에 세조가 신기하고 기특하다는 마음에 이 소나무 가지에 친히 옥관자를 걸어 주고 후일 정이품 벼슬(조선시대 장관급)을 내렸다는 고사가 있으며 지금도 속리산 법주사 앞에 그 '정이품송'이 살아있다.
두번째 일화는 오대산 상원사 청량선원에 있는 국보 제 221호인 문수동자상과 관련 된 일화로
세조가 오대산 계곡에서 잠시 쉬면서 몸에 난 종기를 신하들 한테도 보이지 않으려고 혼자 목욕을 하고 있는데 그때 동자 한 명이 노는 걸 본 세조가 등을 좀 씻어 달라고 했다.
목욕을 마친 뒤 세조가 "어디 가서 임금의 몸을 씻어 주었다고 말을 하지 마라"라고 했다.
그러자 동자도 "대왕도 어디 가서 문수보살을 직접 보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라고 한 뒤 어디론가 사라졌다.
세조가 깜짝 놀라 두리번 거렸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오랫 동안 고생했던 종기도 씻은 듯이 나았음을 알게 되었다.
세조는 기억을 더듬어 화공에게 동자로 나타난 문수보살의 모습을 그리게 했고 이것을 동상으로 조성한 것이 문수동자상이라고 한다.
광릉 주차장은 무료로 주차할 수 있다.
주차장에 주차하고 광릉을 둘러 본 후 광릉 수목원 앞 둘레길을 산책할 수 있고 광릉수목원도 입장할 수 있다.
참고로 광릉수목원 주차장은 사전 예약제로 예약을 하지 않은 승용차는 수목원 주차장에 주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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